우리가족만의 소형별장으로 놀러오세요.

Superhostiteľ

Minidom od hostiteľa 완형

  1. 4 hostia
  2. 2 spálne
  3. 1 lôžko
  4. 1 kúpeľňa
완형 je superhostiteľ
Superhostitelia sú skúsení, vysoko hodnotení hostitelia, ktorí chcú svojim hosťom čo najviac spríjemniť pobyt.
Skvelý zážitok z príchodu a ubytovania
95% nedávnych hostí ohodnotilo spôsob ubytovania a príchodu 5 hviezdičkami.
Bezplatné storno do 18. 10..

AirCover

Každá rezervácia zahŕňa bezplatnú ochranu pred stornovaním zo strany hostiteľa, nepresnosťami v ponuke a ďalšími problémami, ako sú napríklad problémy s príchodom a ubytovaním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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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별장으로 잔디 마당과 넓은 주차장(콘크리트포장), 전기차충전시설, 야외바베규 및 불멍가능하며,주변에 인가가 없어 우리 가족만의 조용한 휴식을 즐길수 있는 곳 입니다

Kde budete spať

Spálňa 1
2 matrace na podlahe
Spálňa 2
2 matrace na podlahe

Čo toto miesto ponúka

Kuchyňa
Wi-Fi
Bezplatné parkovanie priamo v objekte
Súkromné, vonkajší bazén
TV
Nabíjačka pre elektromobily
Klimatizácia
Terasa alebo balkón: Súkromný
Bezpečnostné kamery v objekte
Nedostupné: Detektor oxidu uhoľnatého

7 nocí v lokalite Jecheon-si

23. okt 2022 - 30. okt 2022

4,92 out of 5 stars from 26 reviews

Čistota
Presnosť
Komunikácia
Lokalita
Príchod
Adekvátnosť ceny

Kde budete

Jecheon-si, North Chungcheong Province, Južná Kórea

제천10경 중 [제1경] 의림지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 하였습니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하였는데 그 첫 글자인 ‘의’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축조된 명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구전에는 신라 진흥왕(540~575) 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871m)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 전해집니다.

그 후 700년이 지나 현감 ‘박의림’이 4개 군민을 동원하여 연못 주위에 돌을 3층으로 쌓아 물이 새는 것을 막는 한편, 배수구 밑바닥 수문은 수백 관이 넘을 정도의 큰 돌을 네모로 다듬어 여러 층으로 쌓아 올려 수문 기둥을 삼았고 돌바닥에는 박의림 현감의 이름을 새겼다고 합니다.

현재는 수리시설보다는 유원지로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는데, 2006년 국가명승 제20호로 지정된 경승지로 호수 주변에 순조 7년(1807)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그리고 수백 년을 자란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폭포 ‘용추폭포’ 등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하며, 호수 주변에 목책 길과 분수와 인공폭포를 설치하여 의림지를 관망하며 산책하기에 좋습니다. 특히, 겨울철 및 해빙기에 잡히는 공어(빙어) 회와 튀김은 담백한 맛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의림지에서 자생했던 순채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릴 만큼 유명한 요리재료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분이며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 선생이 노후에 여생을 보낸 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가야금을 타던 바위 우륵대(일명 제비바위, 연암, 용바위)와 마시던 '우륵정'이 남아 있습니다.

의림지에 얽힌 전설

옛날 의림지가 생기기 전에 이곳에 부잣집이 있었다. 하루는 이 집에 스님이 찾아와 시주할 것을 청하였다. 그런데 이 집 주인은 탐욕스러울 뿐 아니라 심술도 또한 사나웠다. 한동안 아무 대꾸도 없으면 스님이 가버리려니 했는데 탁발 스님은 가지 않고 목탁만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심술이 난 집주인은 거름 두엄에 가서 거름을 한 삽 퍼다가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바랑에 받아 넣고선 머리를 한 번 조아리더니 발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집안에서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독에 가서 쌀을 한 바가지 퍼다가 스님을 뒤쫓아가 스님에게 주며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었다. 스님은 그것을 받더니 며느리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조금 있으면 천둥과 비바람이 칠 터이니 그러면 빨리 산속으로 피하되 절대로 뒤돌아보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듣고 며느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집안에서는 집주인이 하인을 불러 놓고 쌀독의 쌀이 독이 났으니 누구의 소행인지 대라고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자기가 스님이 하도 딱해 퍼다 주었다고 아뢰었다. 시아버지는 크게 노하며 며느리를 뒤 광에 가두더니 문에 자물쇠를 채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해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울리고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광속에서 안절부절못하는데 더 요란하게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치더니 잠겼던 광 문이 덜컹 열리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탁발승의 말이 생각나 얼른 광속을 빠져나와 동북쪽 산골짜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마쯤 달려가던 며느리는 집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생각이 나서 뒤돌아보지 말라던 스님의 말을 잊고 집이 있는 쪽을 뒤돌아보았다.

그 순간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더니 며느리의 몸은 돌로 변해갔으며 집이 있던 자리는 땅속으로 꺼져서 온통 물이 괴고 말았다. 물이 고인 집터가 의림지이며 며느리가 변해서 돌이 된 바위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제비바위(연자암) 근처 어디엔가 서 있다는 것이었다.


[제2경] 박달이와 금봉이 전설이 있는 박달재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대중가요로 전국에 널리 알려진 박달재는 조선 중기 박달과 금봉의 슬픈 사랑이야기로도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예전에는 충주와 연결된 유일한 길이어서 통행량이 많았으나, 현재는 통행의 편의성이 좋아져 예전만큼 교통량이 많지 않습니다. 굽이굽이 굽어있는 이 고개는 돌아가는 묘미가 있는 것인지, 최근에는 새로운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을 받고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박달, 금봉의 비극적 사랑이야기를 거름삼아 다른 사랑이 돋아나는 길이라고 한다나요?

특히 최근에는 박달과 금봉의 한풀이를 위해 조성한 박달재목각공원 및 목각전시체험장 등 나무의 낭만까지 느껴보실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박달재는 천등산뿐만 아니라 인근에 인등산과 지등산도 함께 있어 天, 地, 人이 모두 갖추어진 유일한 곳으로, 아득한 옛날 우리민족의 시원과 함께 하늘에 천제를 올리던 성스러운 곳입니다. 언어학적으로도 박달은 순수한 우리말로 한자 자체가 가진 의미는 없으며, 박은 밝다, 크다, 하얗다, 높다, 성스럽다 등의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만큼 민족의 역사성을 높다랗던 재에 담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자동차를 이용하여 10여 분만에 재를 넘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박달재와 다릿재를 넘으려면 걸어서 며칠이 걸렸다고 합니다. 또한 고갯길이 워낙 험하고 가파른 데다 박달나무가 우거져 있어 호랑이 같은 산짐승들이 불시에 튀어나오는 것은 물론 행인을 노리는 도둑이 많아 이곳을 넘는 새색시는 두 번 다시 친정에 가기 어려웠다고도 하는 슬픈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친정이 그리워도 다시는 갈 수 없는 슬픔에 시집가는 새색시가 눈물을 쏟는다고 해서 '울고 넘는 박달재'라고 불륀다고 하네요.

박달재목각공원
박달이와 금봉이의 한풀이를 위해 박달재에 두 인물 중심의 목각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아기를 목마태운 박달이와 금봉이가 환생한 듯 다정히 숲길을 거닐기도 하며, 성각스님의 손끝을 통해 과거에 못다한 사랑을 현대에서 실현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조각들은 기다림과 그리움에 해학적으로 목이 길게 빠지거나 눈이 튀어나온 모습으로 그들의 마음이 직관적으로 전달됩니다. 공원 한쪽에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에 불상을 조각한 목굴암과 오백나한상 전시관이 있습니다.

박달재에 얽힌 전설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마침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과년한 딸이 있었다. 사립문을 들어서는 박달과 눈길이 마주쳤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고, 금봉은 금봉대로 선비 박달의 의젓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 밤 삼경이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가 서성이던 박달도 역시 잠을 못 이뤄 밖에 나온 금봉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선녀와 같아 박달은 스스로의 눈을 몇 번이고 의심하였다. 박달과 금봉은 금 새 가까워졌고 이튿날이면 곧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게 되었다. 밤마다 두 사람은 만났다. 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를 굳게 약속했다. 그리고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났다. 금봉은 박달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사립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서울에 온 박달은 자나 깨나 금봉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만을 지었다.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과장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던 박달은 결국 낙방을 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금봉은 박달을 떠나보내고는 날마다 서낭당에서 박달의 장원급제를 빌었으나,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봉은 그래도 서낭에게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을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난 사흘 후에 낙방거자 박달은 풀이 죽어 평동에 돌아와 고개 아래서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며 목 놓아 울었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 쫓아 금봉의 이름을 부르며 뛰었다. 고갯마루에서 겨우 금봉을 잡을 수 있었다. 와락 금봉을 끌어안았으나 박달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이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제3경] 청풍명월의 영원한 연인 월악산

월악산은 1984년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소백산을 지나 속리산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위치한 산으로, 뛰어난 경관과 아름다운 계곡의 정취를 간직한 곳이 많아, “제2의 금강산”, “동양의 알프스” 등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산입니다. 월악산은 독특하게도 동서남북 네 방향 모두 산행 시작점이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 다양한 시작점이 있는 만큼, 보는 위치에 따라 얼굴이 다양하며, 사계절 내내 다양한 풍경을 다채롭게 즐겨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산세가 험준하고 기암절벽이 치솟아 올랐던 월악산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신성스러운 정기를 담고 있다고 하여 성역화 되어, 주봉우리를 영봉(靈峯)이라 칭하며 중히 여겼다고 합니다.(산악지형인 우리나라의 산 중에 주봉의 이름이 영봉인 것은 남한의 월악산, 북한의 백두산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덕주사, 신륵사 등의 전통사찰과 덕주마애불, 사자빈신사지척탑, 신륵사 3층탑 등 다양한 문화자원, 천연기념물 제337호 망개나무 자생지, 완만한 지세의 자연생태관찰로 등의 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닷돈재, 송계, 용하 야영장 등 풀옵션 숙박시설, 월악산 국립사무소에서 운영하는 환경교육 체험프로그램 등이 준비되어 있어 문화, 생태, 체험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재미로 알아보는 월악산 명칭 유래
높이 1,097m의 소백산맥에 속한 월악산은 달이 뜨면 주봉인 영봉에 걸린다 하여 신라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이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며 5대 악산으로 일컬어지는 월악산으로 이름이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월악산 명칭에 관한 재미있는 속설이 있습니다. 먼저 월악산이 한 때 ‘와락산’ 으로도 불리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재미삼아 살펴보면, 크게 두가지 설이 존재한다고 하는데요. 먼저 첫 번째는 후백제의 견훤이 이곳에 궁궐을 지으려다 ‘와락’ 무산되었다는 설, 두 번째는 고려 태조왕건의 수도 후보지로 개성 송악산과 중원 월형산이 경쟁하다, 개성 송악산으로 결정되자 도읍의 꿈이 ‘와락’ 무너져 지칭되었다는 설이 있다고 하네요.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설화처럼 떠도는 내용이지만 이처럼 월악산과 얽힌 일화를 통해 월악산이 중부지방에서 꽤나 영험하고 유명한 산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생태자연의 보고 및 천연기념물 망개나무 자생지
완만한 지형⋅지세와 계곡을 낀 울창한 자연관찰로에는 150여 종 20만 본 정도의 야생화가 있어 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꽃과 어류, 조류 등 다양한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을뿐 아니라, 천연기념물 제337호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지에 드물게 자라는 희귀종인 망개나무 자생지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송계리 망개나무는 해발 400m에 위치하고, 수령 150살로 추정되며, 높이는 17m정도 된다고 합니다.


[제4경] 호수위의 작은 민속촌 청풍문화재단지

청풍호는 충주댐 건설에 따라 생겨난 호수로, 충주댐 건설로 인해 제천 인근 3개 시군의 11개면 101개 리,동, 7천여가구, 4만여명의 인구가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총수몰면적 약50%가 제천지역을 차지하고 있어, 제천시에서는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을 기억하고, 수몰지구 보물과 문화재 등을 보전하여 수몰민들의 고향을 잃은 애환을 달래기 위해 청풍문화재단지를 조성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청풍호반의 작은 민속촌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청풍은 선사시대 문화의 중심지로서 각종 구석기시대 유적 및 고인돌 유적이 출토되는 등 과거 문화교류에 선봉에 선 지역으로 인식됩니다. 이를 증명하듯,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의 세력 쟁탈지로 제천의 수많은 관방유적들에서 삼국의 건축양식을 관찰할 수 있기도 해 소용돌이 치는 중원쟁탈전 속에서 중요한 도시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며 수운을 이용한 상업과 문물이 크게 발달하였고, 그런 문화적 교류를 바탕으로 충청도 계열 성리학의 여러 거장들을 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1978년부터 시작된 충주다목적댐 건설로 수몰지구가 생기자 이를 아쉬워한 사람들이 이곳에 있던 각종 문화재을 한 곳에 모아 문화재단지를 조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단지 내에는 보물 2점(한벽루, 석조여래입상), 지방유형문화재 9점(팔영루, 금남루, 금병헌,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4동), 지석묘, 문인석, 비석 등 42점과 생활유물 2천여 점이 원형대로 이전 복원되어 있어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이어진 남한강 상류지역 청풍의 역사와 문화를 한자리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새로운 볼거리, 내륙의 바다 청풍호
남한강 상류지역으로 화려했던 중원문화를 청풍호에 묻어두고, 청풍호는 최근 내륙의 바다라는 별칭을 가지고 화려하게 부활하였습니다. 충주댐 건설로 생긴 뱃길 130여리 중 볼거리가 가장 많고 풍광이 뛰어나 관광객들의 많은 발길이 이어졌기 때문인데요. '청풍의 작은 민속촌'인 문화재단지를 시작으로, 봉황이 호수 위를 나는 듯한 형상을 지닌 비봉산, 낙엽이 금은비단은 수놓은 산 같다 하여 퇴계 이황선생의 사랑을 받은 금수산 등 뛰어난 절경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봉산 정상에서 청풍호를 조망할 수 있는 청풍호반 케이블카와 모노레일, 번지점프 등 레저체험, 산악체험, 한방건강체험 등 각종 테마체험시설로 제천 최고의 종합관광지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5경]청풍호반 비단 물결로 수놓은산 금수산

금수산은 흰 바위로 둘러싸여 옛날에는'백암산'이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의 학자이며 문신인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이곳에 와,
풍광이 수려한 것을 찬탄하고, '비단으로 수놓은 산'으로 이름을 고치라고 명하여 금수산이 되었다고 한다.

퇴계 이황 선생도 감탄한 금수산
제천시와 단양군의 경계, 월악산 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한 금수산(錦繡山)은 해발 1,019m 수려한 맵시를 가진 산입니다. 정상을 기점으로 북으로는 신선봉과 함께 능강계곡이 시야에 들어오며, 남쪽으로는 월악산과 함께 백두대간이 아련히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그 아래로는 청풍호반과 문화재단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쾌속 유람선의 물길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래서 일까요? 조선시대의 대문인이었던 퇴계이황 선생은 금수산의 단풍이 마치 비단으로 수놓은 듯 아름답다고 하여 감탄, 산 이름을 바꾸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용담폭포와 능강계곡, 금수산에서 발원하는 폭포수

금수산은 봄이면 이름 모를 풀꽃들이, 여름이면 얼음골의 시원한 녹음과 폭포소리들이, 가을이면 비단이 수놓인 듯한 단풍이, 겨울이면 청풍호의 물안개로 찬란히 피는 눈꽃이… 이렇듯 철철 넘쳐흐르는 금수산의 매력때문에 이 곳은 사계절 내내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천여행의 고수라면 금수산은 여름에 찾으실텐데요. 그 이유는 바로 금수산에서 발원한 폭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청룡이 머물다 승천했다는 용담폭포는 넓은 암반위로 30미터의 물줄기가 시원스레 쏟아지는 폭포로 금수산행의 백미로 꼽히는 곳입니다. 상천리 백운동에서 출발하여 용담폭포를 감상한 뒤, 이 곳에서 10분정도 로프에 몸을 의지해 급경사 바위지대를 지나면 용담폭포를 굽어보며, 폭포 위 선녀탕까지 함께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능강구곡이라고도 불리는 능강계곡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능강구곡은 쌍벽담, 몽유담, 운폭, 관주폭, 용주폭, 금병대, 연자탑, 만당암, 취적대(취벽대)를 이르는 데요. 시오리나 되는 긴 폭포와 계곡은 청정지역 제천에서도 손꼽히는 청정지역입니다. 능강계곡을 지나 2시간 정도 산행을 하시면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한양지)'이 있어 여름에도 이색적인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제6경] 선경에 새긴 선비의 절개와 단심 용하구곡

용하구곡(用夏九曲)은 의당 박세화 선생이 일제의 만행에 비분강개하여 주자 영정을 모시고 덕산면으로 들어와 후학을 양성하다, 1898년 주자의 무이구곡시 중 4자씩을 취해 국운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선경에 새긴 글귀를 말합니다. 용하(用夏)는 맹자의 글에서 따온 문구로 고대 태평성대를 이뤘던 하나라의 문화를 발원하자는 의미를 담은 용어이죠. 조선 말 자주성을 상실한 세태를 비판하며 자주성을 찾고 오랑캐(일제)를 물리쳐 국운을 회복하자는 소망을 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의당 박세화 선생은 국운의 쇄락을 탄식하며 수차례 조정의 추천을 물리고 학문에 전념하였으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으로 일제의 내정간섭이 심화되자 거의(의병을 일으킴)를 꾀하던 중 밀고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용하구곡에 선비의 단심과 국운의 안녕을 선경에 새긴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제천 남현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치열한 교전 끝에 청풍에서 붙잡혔으며,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되자 절식, 23일만에 순국하셨습니다.

선경에 있는 돌에 새긴 피묻은 진심, 용하구곡

제1곡 청벽대(聽碧臺 푸르름을 간직한 곳) : 홍단연쇄(虹斷烟鎖) - 무지개 끊어지고 연기가 자욱하구나(국운의 꿈이 사라지고 흉흉한 연기 속에 갇힌 작금의 형국을 통탄함)
제2곡 선미대(仙味臺 신선의 흥취를 가진 곳) : 전산기중(前山幾重) - 장래의 첩첩산(무거움)이 그 얼마인가(도학과 장래의 무거움에 대한 탄식)
제3곡 호호대(好好臺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한 곳) : 가학정도(架壑停棹) - 배는 서고 노도 멈추었네(도학과 국운의 맥이 끊어짐을 통탄)
제4곡 섭운대(躡雲臺 구름을 밟는 곳) : 암화수로(巖花垂露) - 이슬 머금고 바위에 꽃이 피었네(도학과 국운이 아슬아슬함을 탄식)
제5곡 수룡담(垂龍潭 용이 드리운 못) : 산고운심(山高雲深) - 산은 높고 구름은 깊네(외세의 횡포가 더해가는 형국)
제6곡 우화굴(羽化窟 애벌레가 날개를 달고 깨어나는 곳) : 원조춘한(猿鳥春閒) - 길짐승, 날짐승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봄(국운의 태평성대를 간절히 바람)
제7곡 세심폭(洗心瀑 마음을 씻는 폭포) : 봉우비천 양병협영 (峯雨飛泉 兩屛夾映) - 봉우리에 내린 비가 샘물이 되고 두 개의 병풍을 함께 비추네(국운이 빨리 개이기를 염원)
제8곡 활래담(活來潭 힘차게 흐르는 연못) : 풍연욕개(風煙欲開) - 연기가 바람에 걷혀 세상이 열리길 바람(국운이 뜻대로 활짝 열리길 희망)
제9곡 활연대(豁然臺 탁 트인 곳) : 제시인간별유천 소립탁이(除是人間別有天 所立卓爾) - 하늘아래 이런 별천지가 있으랴 이 곳이 가장 뛰어나구나(국운과 도학의 앞날이 우뚝 서기를 희망)


[제7경]심산유곡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송계계곡

월악산 영봉을 휘감는 핏줄, 송계8경
월악산(1,094m)은 한수면 송계리에 자리하고 있는 국립공원입니다. 월악산은 제천10경의 제3경을 자리할 만큼 풍광이 뛰어난 국내 5대 명산이기도 합니다. 인근 선조들은 이 안에 있는 아름다운 송계리의 계곡들을 "송계8경"이라 칭하며 그 풍광의 아름다움을 극찬했습니다. 송계8경은 팔랑소(八娘沼), 와룡대(臥龍臺), 망폭대(望瀑臺), 수경대(水鏡臺), 학소대(鶴巢臺), 자연대(自然臺), 월광폭포(月光瀑布), 월악영봉(月岳靈峰)을 말합니다. 영봉을 위시해 근엄하게 펼쳐진 월악산 자락에 송계8경의 계곡들이 그 핏줄처럼 아름다움을 배가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계곡물이 얼음처럼 차가워 무더운 여름철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많은 피서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며, 인근 월악산 영봉과 덕주사가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관광지 입니다.

하늘나라 8공주의 목욕탕, 팔랑소(八娘沼)

'팔랑'은 바람을 뜻하는 말로, 옛날 하늘나라 8공주가 바람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합니다.(신라8공주가 국태민안을 기도하며 제를 올렸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팔랑소는 폭포로 이뤄진 호수인 폭호(瀑湖)로 맑고 깨끗하지만 많이 깊지는 않습니다. 넓은 반석이 평탄하게 펼쳐진 형태로, 계곡 물줄기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감돌아 흘러 휴식하기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용이 승천한 자리, 용초(龍礁) 와룡대(臥龍臺)

용이 누워있다가 승천하였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일명 용초(龍礁)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와룡대는 폭포로 이뤄진 호수인 폭호(瀑湖)로 물이 맑고 깨끗하지만 깊어서 용이 누워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폭포를 내려다보는 적반송 한 그루, 망폭대(望瀑臺)

기암 정상에서 내려다본 송계8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하여 “폭포(8경)를 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유래된 지명, 망폭대. 망폭대는 절리(암석 등이 외력(풍화, 지각변동 등)에 의해 갈라진 틈)로 그 바위 위에는 적반송 한 그루가 수백년 풍상을 견뎌내고 의연하게 서있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나무를 속리산 정2품송에 이어 '월악산 정3품송' 이라 칭한다고 합니다.

흐르는 물에 내 얼굴을 비춰보세요, 수경대(水鏡臺)

수경대는 주변에 흐르는 물이 거울과 같이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덕주사 마애불상으로 가는 길을 연결해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암벽을 병풍으로, 그 아래 폭포와 폭호가 이루어져 물이 맑고 깨끗합니다. 한편 고려시대 몽고군이 쳐들어오자 갑자기 천둥번개와 비바람이 일었고, 이에 놀란 몽고군이 월악대왕의 신령스러운 도움이 있다 하여 회군하였다는 일화도 함께 전해지는 장소입니다.

한 쌍의 안락한 학의 둥지, 학소대(鶴巢臺)

학의 둥지라는 뜻으로, 옛날 한 쌍의 학이 월악산을 오가며 정답게 살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바위와 소나무와 한 쌍의 학이 살았다는 학소대. 학소대는 덕주사 일주문으로 들어서기 전 보이는 단애(절벽)으로 층층의 바위와 주변의 작은 소나무가 어우러져 경치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 앞에서 다투었다가도 금방 사랑을 되찾을 수 있어 한 쌍의 학도 영생해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제천의 아마존, 자연대(自然臺)

물도, 숲도, 나무도 모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여 지어졌다는 자연대. 자연대는 충청북도의 금강산이라고 불릴 만큼 자연경관이 아름답습니다. 도로변에 위치하면서도 길에서 보이지 않도록 무성한 숲에 가려진 제천의 아마존(!?)입니다. 자연대 가까운 곳에는 서당계곡이 있어 이 또한 좋은 경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 온 뒤 요동치는 월광(폭포) 소나타 한 곡 들을래요?, 월광폭포(月光瀑布)

3단 폭포로 암벽에 흐르는 두개의 물줄기는 30m에 이릅니다. 갈수기에는 수량이 적어 폭포의 진면목이 다 드러나지 않지만, 우기(비온 뒤)때는 30m에 이르는 3단 폭포의 위용이 근사합니다. 폭포수는 비류낙하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담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따로 고이지 않습니다.) 월광폭포는 신라 승려 도증이 창건하여 조선시대까지 있었다고 전해지는 월광사가 있던 자리로, 임진왜란 때 불타 터만 남은 월광사지의 앞글자를 본따 월광폭포로 명명되었다고 합니다. 월광폭포 근처 월광사지 터에서는 돌거북과 월랑선사탑비(보물제360호) 등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1층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신령스러운 한반도의 산 남한 월악산, 북한 백두산! 월악영봉(月岳靈峯)

월악산의 신령스러운 대장 월악 영봉의 별칭은 국사봉(國師峰)으로 국가를 지키는 봉우리라는 뜻입니다. 과거 한반도 주 봉우리가 영봉인 곳은 월악산과 백두산이 유일한데, 앞서 소개했듯 수경대에서 몽골군을 신령한 힘으로 내쫓은 과거의 기록으로 신성시 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고 합니다. 여하튼 이름과 별칭을 통해, 과거 우리 선조들이 월악산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 지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월악영봉은 해발 1,097m로 150m의 화강암 두개가 돌충해 있는 기암단애입니다. 영봉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송계계곡, 서쪽에는 용하계곡이 합쳐진 광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월악산은 그 중심부에서 내려다보면 인근 3개 시군이 가시권역에 있으며, 북쪽에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어 한강으로 진출할 수 있는 중심 길목에 해당하여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시 되었습니다. 이에 고대부터 좌우를 차단하는 방어성을 수축하였고(덕주산성), 이 중 가장 높은 월악영봉은 당연히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천혜의 전망대 역할을 하였습니다.


[제8경]비 온 뒤 솟아나는 옥빛의 대나무순 옥순봉

대한민국 명승 제48호 옥순봉 : 비 온 뒤 죽순의 모양처럼 희고 푸른 봉우리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옥순봉(玉筍峯)은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위치하며, 대한민국 제48호 명승지로, 제천10경 중 제8경에 속하는 곳입니다. 옥순봉휴게소에서 전망대까지 5분정도 올라가면 그 수려한 산세와 힘찬 봉우리들을 보며 절로 감탄사가 나오기도 하죠.

특히 옥순봉은 예부터 아름다운 경치로 퇴계 이황부터 단원 김홍도 등 많은 문인, 화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실례로 퇴계 이황선생이 단양군수로 재직하며 청풍군수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했지만 거절당하여, 옥순봉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問:단양의 관문)이라고 새긴 일화는 꽤 유명합니다. 학문이 깊었던 퇴계선생이셨던 만큼 옥순봉의 진가를 그때부터 알아보시지 않았을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단원 김홍도 선생도 청풍의 남한강가를 수없이 거닐며 실경산수 화법으로 「옥순봉도」를 화첩에 담으셨는데요. 수직의 봉우리들이 하늘을 떠받치듯 구성되어 그 신비로움이 배가된 모습입니다.(현재 호암미술관 소장)

이 밖에도 지리지 『동국여지승람』에서는 "기묘한 산봉우리들이 조화를 이루어 금강을 방불케하고 산봉우리가 이어진 산형이 절묘할 뿐만 아니라 기복과 굴곡이 자유분방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라고 극찬, 이중환 선생은 『택리지』에서 "옥순봉은 수많은 봉우리가 온전히 돌로 되어 우뚝 솟아있어서 마치 거인이 손을 잡고 있는 것 같다." 며 이 곳의 뛰어난 경관을 묘사하신 바 있습니다.

낮은 높이로 등반하기 수월

한편 이처럼 많은 문인, 화가들이 사랑한 옥순봉의 산세는 해발 283M의 낮은 산으로 정비가 잘 되어있어 1시간 산생이면 충분히 등반이 가능합니다. 짧은 산행에도 오르고 나면 확 트인 정상부는 너른 안부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 쉬어가기 좋습니다. 또한, 노송이 그 운치를 더해주어 그 옛날 선계가 부럽지 않을 정도 입니다.
산행과 더불어 유람선을 타고 옥순봉과 그 옆 구담봉의 멋들어진 석벽을 조망하는 것도 정말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36번 도로를 타고 장회리 계란재에 닿으면 왼쪽으로 탐방지원센터 매표소가 있는데, 이곳이 옥순봉 산행 들머리 입니다.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산길 초입에는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계란재에서 옥순봉까지는 총 2.3km 구간이며, 이웃한 구담봉을 연결하여 산행하는 것 코스는 5.8KM로 약 4시간여 소요되나 겨울 산행지로 가장 유명한 코스이기도 합니다.


[제9경 ] 제천 근교의 여름 피서지 탁사정

소나무 숲과 기암절벽의 조화
원주에서 제천으로 들어오는 국도변에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 잡은 탁사정은 조선 선조 19년(1568) 제주 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와 '팔송'이라 명명하였고, 그의 아들 임희운이 정자를 짓고 '팔송정'이라 칭했습니다. 이후 허물어진 팔송정을 후손 임윤근이 다시 세웠고, 옥파 원균상이 탁사정(濯斯亭)이라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6.25 전쟁으로 불에 탄 것을 1957년에 재건, 제천 10경 정비사업으로 제천시에서 보수하였습니다.

세상의 먼지를 씻고 고고한 인격을 지키고 싶을 때

‘탁사정’은 중국 초나라의 굴원이 지은 어부사에 나오는,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아영(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아족창랑의 (물이 더러우면 내 발을 씻는다)'에서 유래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세상의 먼지를 잔뜩 뒤엎어 너무 지쳐있다고 느낄 때 탁사정에 오르면, 가슴 깊이 파고드는 솔바람과 함께 발밑을 휘감는 듯한 깊고 푸른 강물이 몸을 깨끗하게 씻겨주고, 웅장한 하게 뻗어나간 산맥이 고고한 인격을 다시금 세워 새로운 삶의 지혜와 의지를 경험할 수 있다 하여 고대 유명 시를 빌어 명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탁사정 정자

제천10경의 탁사정은 탁사정 주위의 절경을 일컫는 것으로, 정자는 따로 찾아가야 합니다. 탁사정의 정자가 사유지에 속하여 입장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인데요. 탁사정에 오르는 길은 원주방향으로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바로 있습니다. 주차장이 있는 강쪽에서는 한없이 높고 가팔라 보이지만 그 뒤는 아주 순한 길이라 실제로 5분정도만 올라가면 바로 정자가 보입니다. 정자를 들어가 보실 수 있다면 그 주변을 에워싼 울창한 솔숲이 탁사정의 고고한 풍치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제10경]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 배론성지


‘배론’이라는 명칭은 지형이 마치 배 밑바닥과 같은 모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좁은 입구에 경사가 비스듬히 있어 안쪽 지형이 잘 보이지 않는 특징과 동시에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원주, 충주 등 여러 도시와 연결되어 있는 산길이 많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천주교는 박해당하던 종교였기에 신자들은 이렇게 요새같은 곳에서 자신들의 신앙촌을 구성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한편 배론성지는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천주교 정신을 이어온 곳으로써, ‘국내 최초의 신학당’,‘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소’,‘황사영 백서 토굴’등 국내 천주교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신앙유산으로 가득합니다. 배론성지의 유명한 단풍절경과 함께 그 당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목숨을 내어 준 옛 성인들의 숭고한 넋을 생각하며 엄숙한 마음을 담아 성지를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배론성지는 숭고한 희생들이 담긴 천주교의 성지이므로,
그들의 고행을 기리며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조용히 장내를 둘러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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